하나의 길

하나의 길 30×42cm pencil on paper 2015

유년시절을 지배했던 회색계단

집 마당 한 편에 있던 2층 주인집으로 통하는 콘크리트 계단은 그 자체로 독립적일 만큼 유년시절의 기억의 중추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자로 뻗은, 어린 내가 한 발 씩 오르기엔 다소 높은, 반듯한 회색 빛 계단은 빛의 각도에 따라, 계절의 온도에 따라, 공기 중의 습기에 따라 그 색을 달리 했습니다.

계단은 표면적으로 놀이의 대상이었지만 그 시절의 상황이 녹아든 회색계단은 오르고자 하는 욕망과 올라오기를 허락하지 않는 공포의 이중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몰래몰래 계단을 하나 씩 오를 때 마다 나의 눈높이는 달라져 있었고 높아진 눈높이는 어른의 눈높이 임을 직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어른의 세계는 2층이고 주인집이었으며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계단의 모습들을 공간 안에서 변형하고 나열하고 극대화하는 작업은 어린 시절 즐겨했던 계단 오르내리기 놀이처럼 종이위의 즐거운 놀이가 됩니다. 또한 지금의 나를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시키고 서로를 용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집니다.